내가 이걸 또
패러디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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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개월여 전이다. 내가 갓 대통령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돼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때다. 미쿡에 다녀오는 길, 잃어버린 10년 동안 훼손된 한미동맹을 복원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하룻밤 자고 가기 위해서는 미쿡님께 일단 뭔가를 줘야 했다. 백악관에 무단점거하고 앉아서 여기저기 사고를 치고 다니던 대통령이 있었다. 캠프 데이비드 숙박권을 달라고 청했다. 졸다가 잘 못 듣긴 했지만 미쿡산 소고기를 수입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좀 어떻게 해 줄 수 없냐고 했더니
"숙박권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싫으면 딴 데 가서 자시오."
대단히 무뚝뚝한 대통령이었다. 졸려서 더 말도 못하고 질 좋고 값싼 소고기로 잘 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조건을 내세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좀 괜찮은 것 같더니, 저물도록 30개월 이상 소고기도 요구하고 SRM도 집어넣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딴청이다. 내가 보기에 이만하면 무리한 요구인데도 자꾸만 더 압박하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캠프 데이비드에 재워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 졸려 죽겠으니 빨리 재워 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이다. 사실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됐는데 자꾸만 더 압박하고 있었다.
"더 압박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재워 달라."
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구울 만큼 구워야 스테이크가 되지, 다우너소가 재촉한다고 고기가 되나."
나도 기가 막혀서
"내가 이렇게 미쿡 후렌들리한데 도대체 뭘 더 압박한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졸려 죽겠다니까."
부시는 퉁명스럽게
"딴 데 가서 자시우."
하고 내 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딴 데 가서 자기는 어차피 틀린 것 같기도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수출해 보시오."
"글쎄 이것저것 따지면 점점 더 거칠고 FTA도 비준이 안 된다니까. 농장주들도 먹고 살아야지 협상하다가 무르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엔 숫제 협상하던 것을 손에서 놓고 태연스럽게 카트 운전대를 나한테 넘기는 것이 아닌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시다바리가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압박하기 시작한다. 저러다가 한미 FTA마저 비준이 무산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로비스트들이랑 협상 조건을 놓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었던 협상 조건이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카트 운전까지 해야 했던 나는 불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캠프 데이비드 숙박권을 줘 가지고 될 턱이 없다. 한미동맹 본위가 아니라 로비스트 본위다. 그래 가지고 미국산 소고기만 되게 수출한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정신줄 놓은 대통령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부시는 태연히 성경을 펴 들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그 바라보던 뒷모습이 어쩐지 집사다워 보이고 유인원과 흡사한 입술과 눈매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워졌다. 부시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귀국해서 협상 결과를 내놨더니 조중동은 잘 해 왔다고 야단이다. 노무현이 했던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보다 낫다는 것 외에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조중동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번에 미쿡 사람도 안 먹는 미쿡산 쇠고기를 노무현보다 더 많이 들여왔으니 한미 FTA비준에도 박차가 가해질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쿡산 소고기는 SRM만 제거하면 스테이크를 맛있게 구워 먹어도 아무런 해가 없으며, 설령 SRM으로 곱창전골을 해 먹는다고 해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로또에 당첨되어 돈 받으러 나갔다가 벼락 맞아 뒤질 확률보다 낮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부시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한미동맹은 혹 안 좋은 점이 있더라도 북풍을 조금 불러오고 국민들에게 반미감정의 위험성을 잘 설명하면 다시 복원되어 좀체 위축되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한미동맹은 한번 반미감정이 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예전에는 미쿡님이 전쟁을 할 때에, 장병들을 용병으로 보내되 자기 나라에서 전쟁을 하는 베트남 사병들보다도 더 낮은 월급을 받고 베트남으로 보냈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요즘 남이 알아주지도 않는 한미동맹을 자기 나라 장병의 피를 흘려가면서 지킬 사람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운하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 박정희각하가 경부고속도로를 밀어붙일 때만 해도 국제기구니 뭐니 하는 데서 말도 안 된다고 하는 반대들을 다 물리치고 고속도로를 지었지만 잘만 쓰고 있다. 건설경기를 살리는 것이다. 땅값올리기다. 지금은 운하 소리는 꺼내지도 못할 분위기다. 어느 누가 운하를 판다는데 환경단체가 가만 있을 리도 없고 요즘은 초중딩들도 광우병 걸려 뒤지면 대운하에 뿌려달라고 난리다.
옛날 사람들은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요, 국익은 국익이지만, 정치를 하고 외교를 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한미동맹과 공기 단축이라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이번 쇠고기 협상도 그런 심정에서 제의했을 것이다. 나는 부시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만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한미동맹을 지킨담' 하던 말은 '그런 대통령이 나 같은 십장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한미동맹이 공고해질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부시를 다시 초청하여 미쿡산 소고기에 등심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청와대에 돌아오는 길로 부시에게 전화를 때렸다. 그러나 요즘 시국이 하 수상하여 부시는 오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캠프 데이비드 쪽을 멍하니 보고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명박산성 너머 이순신장군 동상을 바라보았다. 명박산성 앞에서 반미좌파들이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아, 그때 부시는 저 반미배후세력을 보고 한미동맹을 염려하고 있었구나. 열심히 스테이크를 먹다가 홀연히 카트 운전대를 넘긴 부시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좌빨 배후세력 아고라 단체 소속이지?' 경찰청장 어청수의 경고가 새어나왔다.
오늘 청와대 뒷산에 올라갔더니 촛불좀비들이 촛불을 들고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었다. 전에 귀족노조들을 구사대로 쿵쿵 두들겨서 밀어붙이던 생각이 난다. 강경진압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최루탄 지랄탄 쏘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탁치니 억했다'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몇 달 전 쇠고기 팔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