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

[사설] 교육현장 혼란 부추기는 이 대통령 발언

1. 입학사정관제를 100% 시행하겠단다. 아무래도 미쿡을 따라하는 것 같은데, 선진국 미쿡에서도 입학사정관제로 100%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바마가 했던 것처럼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는 방법도 아주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실 내가 다니던 카플란에 다니던 중국 학생들은 연봉협상의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러 온 직장인들이 아니면 고등학교만 졸업한 꼬꼬마들이었는데, 카플란→커뮤니티 칼리지→4년제 대학 테크를 타러 온 친구들이었다. 그 지역에 1년 이상 살았다면 local로 인정되어 커뮤니티 칼리지 학비도 10분의 1 정도로 내려간다. 뭐 이런 건 집어치우고

2. 한 해에도 어린 학생들이 몇 명씩 자살하고 수능 점수 하나로 학생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대학입학과정은 한국사회가 공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몇 안 되는 판타지이다. 어쨌든, 내 동기들 중에는 사교육을 한 번도 안 받아봤다는 사람이 상당히 존재하긴 한다. 학교 차원의 '야자'나 명문 지방고의 엘리트 교육을 공교육이라고 해야 할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그걸 다 뒤집어엎겠다니, 역시 이명박은 고도의 본인 안티라는 Curtis님의 가설이 맞아들어가는가?

3. 한국인들은 워낙 의지가 강해서 서울대에서 줄넘기로 학생을 선발한다면 다음날 줄넘기 과외를 만들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학교에서 배운 내용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데 사교육이 없어질 리가 없지. 그리고 특목고가 아닌 한 학생 전체의 '스펙'을 일일히 챙기고 영어말하기대회 같은 곳에 내보내 줄 학교가 존재할 수 있을까?

4. 어쩌면 이것 또한 좌익척결의 의지일지도 모르겠다. 사교육시장은 역설적이게도 운동권들을 먹여살리는 가장 큰 시장이었다. 80년대 초반의 수배 운동권들은 입주과외로 연명함과 동시에 은신처를 확보했으며(전또깡 시절에는 과외가 불법이었으니 학부모들도 비밀리에 일을 진행하는 수밖에...) 빨간 줄이 그어져 생계가 어려워진 운동권들을 따뜻하게 환영한 곳은 학원이었다. 웬만한 운동권들은 '울산의 학원재벌'이 뭐하는 운동권인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사실 논술시장만 그랬던 것은 아니고, 내신이나 수능 관리를 해주는 일반 학원들도 그런 경향이 강하다. 지금은 타임에듀로 통합된 청산학원에서도 탄핵 사태 때 선생님들이 얼마나 침을 튀겼는지 아직도 생각이 난다. 류선생님, 근데 아직 민주당이 역사의 뒤안길로 안 사라졌네요...
하여간, 완전히는 아니겠지만 입학사정관제에서 보는 임원 경력이나 각종 대회 참가 같은 것은 운동권 학원강사들이 자신의 특장점(말빨과 정세분석?)을 내세울 수 없는 분야이다. 자기소개서 작성의 신시장을 개척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글쎄...솔직히 나도 논술이 이렇게 순식간에 몰락할 줄은 몰랐다.

5. 말은 이렇게 길게 써 놨지만 수령쥐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며칠 후에는 '오해다'라고 할 가능성이 크겠지?

6. 이도저도 아니라 수령쥐의 손자 손녀들이 너무너무 머리가 나빠서 사교육으로도 커버가 안 되는 지경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이건희도 솔직히 고백한 바 있다. 자식 교육은 진짜 맘대로 안 된다고. 수령쥐의 경우에도 자식들이 하나 빼고 다 지방대에 갔다는데 개인적으로 얼마나 원통할까? 물론 나는 이명박 자식교육의 진짜 문제는 지방대를 간 게 아니라 히딩크랑 사진 찍는데 쓰레빠를 찍찍 끌고 나오도록 아들 교육을 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자기 손자손녀들이 대학 안가도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보다 그냥 대학을 쉽게 가게 해 주는 편이 더 쉽겠지?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6개월 복무만으로 군복무를 깔끔하게 해결하는 석사장교제도는 전두환 아들 때 생겨서 노태우 아들 이후로 없어졌다.
그렇다면 왜 입학사정관제인가? 아이의 장래성을 평가한다는데 대체 뭘 보고 평가하는가? 나도 학교에서는 나름 잘나가는 인재였지만 지금은 오덕 히키코모리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반대로 소싯적에 살인, 강도 빼고 웬만한 건 다 해봤다는(뭘?) 친구가 정신차리고 서울대에 들어온 사례도 있다. 무슨 '평가'일까?
사실 무슨 평가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대학 마음대로일 테니까. 설령 기준을 공개한다고 해도 '장래성'이라는 게 무지하게 모호하다는 게 문제다. 나는 이 '대학 마음대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은 어떤 인재를 원할까? 쓸데없이 논술학원 물이 들어서 오세훈 시장님 강연에서 뻘질문이나 하고 등록금 인하 투쟁에도 나서는 정치참여의식이 훌륭한 신입생? 아니면 돈이 많아서 건물 하나씩 턱턱 지어줄 수 있는 부모가 있는 신입생? 가난해서 맨날 등록금벌이 알바에 나서느라고 휴학을 일삼는 학생?

7. 그러나 사회의 공공성을 유지시켜주는 마지막 판타지가 사라진다면 민중들은 혁명에 나설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벌써 우리는 수령쥐의 뻘짓에 서서히 무감각해져가고 있다. 만일 입학사정관제가 실현되어서 대학에 잔디 하나씩 턱턱 깔아주게 생긴 집 자식들이 헬기를 타고 등교하는 일이 생겨도 과연 민중들은 분노할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 논리로 FTA를 찬성한 맑스주의자가 있었는데, 큰 스승님은 '스탈린주의자네효' 한 마디로 사태를 요약했음을 밝혀 둔다.

덧 -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면접관: 너네 아버지 뭐하시냐?
학생: 한국타이어 다니십니다.
면접관: (혹시...) 그럼 할아버지는?
학생: (당당하게) 전직 대통령이요.
면접관: 아 ㅆㅂ

혹자에 의하면 연대 수시 면접에서 '무슨 차 타고 다니냐'고 물어본 경우가 이미 있다고 하는데 글쎄...

by 닷오-르 | 2009/07/29 03:21 | 단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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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식상한감자 at 2009/07/29 14:07
이번에 한나라당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내신은 대학입시에 반영하지 않는 법안을 추진한다고 했을 때 오히려 반발한 것은 교육부였음. 내부부터 개혁에 반발하고 있어서 아마 전면개정은 2MB도 쉽게 할 수 없을거임.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교육만큼은 학부모들이 미쳐 있으니까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반발이 꽤나 심할듯. 논술도 원래는 그냥 글 싸지르는 거였는데 주관적이라고 반발도 심하고 채점도 어렵다고 해서 갈수록 서술형 문제화되고 있잖아.
근데 확실히 몇년 전에 비해서 반발하는 끗발이 떨어진 거 같긴 함. 예전같았으면 학부모들이 전화질하고 행정실 쳐들어가고 그랬을 거 같은데...
Commented by 닷오-르 at 2009/07/29 15:41
학부모들은 그냥 명박이가 또 말 싸질렀구나...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차피 입학사정관제를 한다고 해도 수능과 내신을 안 챙길 수는 없지...
Commented by Bloodstone at 2009/09/06 00:24
입학사정관제가 미쿡에서 계급 재생산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고, 실제로도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결코 할 수 없는 (돈은 정말 많은) 친구들이 몽땅 미쿡 대학 학부로 유학을 가 버리는 걸 본 입장에서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는 제도 중 하나입니다. 그나마 내신-수능-수시의 제도가 적어도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입학사정관제는 상류층의 자녀가 아닌 일반인들이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것 자체를 막는다고 생각해요.

블로그들 돌아다니다가 링크 추가하고 갑니다 :)
Commented by 닷오-르 at 2009/09/06 12:05
사실 '가능성'을 보고 뽑는다는 게 모호하기는 하죠. 어떨 때 보면 입학사정관제를 하느니 차라리 줄넘기로 학생을 선발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싶고요. 돈 없어도 줄넘기 연습은 할 수 있으니까...
글은 이렇게 써 놨습니다만 현 정부가 대단한 음모나 계략이 있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미쿡 하니까 따라하는 정도? 미쿡 따라한답시고 핸펀 받는 사람도 돈 내게 하려다가 관뒀었죠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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