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은 이야기들

사실 간단한 문제였다. 상대가 싫어하는 말은 안 쓰면 된다. 하루 24시간 쓰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불특정다수가 보는 언론이나 그런 얘기를 싫어할 것 같은 사람 앞에서만 안 쓰면 된다. 그 말을 상대가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렇게 역겹고 못 참을 일인가? 그렇게 꼴페미드립을 쳐야 했나? 어떻게 보면 이글루의 전 남성 인민들이 꿀벅지라는 용어를 사용할 권리를 사수하기 위한 총력투쟁에 나선 것 같은 뇌의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는 부분은 남성들 심리를 잘 모르겠다. 그만큼 욕망이 강하다는 건가? 오오, 어느 날 이오공감을 나오면서 조그만 것에 분개하는 우리네 키워들이여...

그리고 꿀벅지의 반대항으로 등장한 짐승돌 관련해서는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째로 꿀벅지 얘기가 나오기 전에 짐승돌이나 초콜릿복근이라는 단어가 남성에게 주는 불쾌감이 독자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었다. 불쾌하다고 말한 남성이 안 보이는데 짐승돌이 남성에게 성폭력적인지 어쩐지 알기는 상당히 어렵다.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꿀벅지만 까고 짐승돌은 안 깐다고 비판해서야 도통 얘기가 안 된다. 아무리 키워들이 무책임하다지만 자기가 할 주장까지 페미들이 해 주길 바래야 하나? 생각해보면 군대 내 성폭력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페미니스트들이다. 아닌 사람을 아직 못봤다. 평소에는 남성 인권에 아무 관심도 없다가 여성인권 얘기가 나오면 갑자기 열렬한 남성운동가가 되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 줘야 할까? 남성인권 드립 치려면 제발 남성운동이라도 제대로 해라...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평소에 관련글이라도 좀 읽어라. 좋은 책 많다. 이러니 초콜릿복근도 꿀벅지만큼이나 문제의 소지가 있는 단어라는 주장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두번째로 꿀벅지란 말에 불쾌감을 느끼는 계층의 사람이 짐승아이돌이라는 말에는 열광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음담패설에 관심없고 불쾌감을 가지는 사람은 남녀 관계없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사실 여자의 경우에 더 많겠지만. 아무래도 꿀벅지라는 말에 거부감이 생기는 사람은 그런 류의 주제 자체에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사실 두 가지 모두를 싫어할 가능성이 높다. 쇼프로에 나와서 남자 복근 만지며 낄낄대는 컨셉의 여성들이라면 꿀벅지라는 말에 어떻게 반응할까? 그런고로 이 경우에도 이중잣대를 논하기는 상당히 어려워진다.

결국 오랜 키워의 역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공격패턴이다. 성희롱이 싫다는 여자가 있으면 '남성도 성희롱당한다'느니 '잘생긴 남자가 해도 성희롱이라고 할거냐'라고 물타기에 들어갈 때와 다름이 없다. 남성이 성희롱당한다는 논거가 여성 성희롱을 정당화할 이유가 안 되는 것은 물론거니와 잘생긴 남자가 치한짓을 해도 여전히 치한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반증사례씩이나 될 것 같지만 사실은 독립적인 문제다. 미국이 아프간을 치고 있다고 해서 소말리아 사람들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문제점을 인정하더라도 초콜릿복근이라는 단어가 불쾌한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꿀벅지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불쾌감이 경감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서로 조심하자는 말 한마디를 못해서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덧: 요즘 이글루에서는 반지성주의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듯하다. 뭔가 논거를 위해 파시즘이나 페미니즘 같은 이런저런 재료들을 사용해서 논의를 전개하면 비현실적이라는 말부터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과 무슨 얘기를 하겠는가?

by 닷오-르 | 2009/09/24 01:06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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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식상한감자 at 2009/09/24 09:06
근본문제는 그거인 거 같다. 여성에게 합당한 사회에서의 '성적 매력'과 남성에게 합당한 사회에서의 성적 매력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 결국 여성은 외모가 사회적 기준에 합당해야 하고 남성은 그것을 잘 받아줄 수 있는(?) 힘을 과시해야 한다는 것. 이미 이 안에 성에 따른 권력구조가 내재화되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근데 사실 둘 다 성적으로 각자의 성에게 강요되는 이상상임에는 틀림이 없어. 마치 하위 권력자가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마냥 상위 권력자도 그 자리를 고수하기 위해 치루어야 하는 비용이 있는 것처럼. 기존에 논의가 분명히 없었긴 했지만, 사실 논쟁 촉발은 항상 'hot issue' 한두 가지에서 퍼져 나가는 법이지. 피장파장 논리 주장하는 사람들과는 별개의 문제로 외모지상주의가 분명 양성에게 억압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현실이면 개드립치는 의견 말고는 충분히 주장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흠 그리고 글쎄, 두 번째 논거는 약간 고정관념 내지는 부분적 근거에 해당하는 듯. '꿀벅지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초콜릿 복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향성 내지는 특성을 담지하고 글을 서술하는데 사실 그 경향성이나 특성이 안 맞는 경우도 적잖이 존재한다고 봐. 뭐 결국 결론은 이중잣대를 논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동일한 것이긴 한데, 일반화시키는 논리를 그렇게 급작스럽게 적용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Commented by 닷오-르 at 2009/09/25 01:01
ㅇㅇ 어떤 사람이 구글링을 해서 최초 발언자가 썼던 과거글을 다 까발리는데 이중잣대를 떠나서 참 무섭더군...
Commented by Bloodstone at 2009/09/24 18:33
군대라거나 남성 성희롱 피해와 같은 부분들을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애먼 여성들에게 화풀이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남성들이 '자신의' 인권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스X라XX라던가... 하는 사이트들을 보면 그런 경향이 더 잘 나타나더군요.ㅠㅠ
Commented by 닷오-르 at 2009/09/25 01:04
어쩌면 거기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여성억압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라는 건 너무 무서운 생각이고, 어쩌면 젠더문제가 여성화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을 것 같기도 합니다. 페미니스트만이 젠더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Commented at 2009/09/25 01:0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닷오-르 at 2009/09/25 01:23
군대문제와 마찬가지인데, 피해받았다는 것이 가해할 권리가 되는 것인지?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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